by 이희욱 | 2011. 03. 16

(0) 디지털라이프

디지털 기술과 홈네트워크는 미래 가정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오래된 이 물음을 두고 여러 예측들이 나왔지만, 대개는 말 그대로 상상이나 예측으로 멈추고 말았다. IT 기술 발전이 지금과 다른 가정과 사무실 모습을 만들어낼 것은 틀림없지만, 그건 뜬구름 같은 얘기들 아니었던가. 그 모습을 눈으로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허나, 미래 가정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본사에 진열된 ‘MS 홈’이다. 이 곳은 MS 주요 기술들을 기반으로 10년 뒤 가정의 모습을 꾸며놓았다. 가상 환경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기술을 이용해 실제로 구현돼 있는 가정 모습이다. 상용화에 이르지 않았을 따름이다.

MS 임원 브리핑센터 안에 마련된 ‘MS 홈’은 일반인 출입이 지극히 제한된 공간이다. 사진 촬영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곳에 들어서면 익숙한 가정 모습과 낯선 풍경이 동시에 펼쳐진다. MS 본사 동의를 거쳐 몇 장의 사진과 더불어 10년 뒤 가정 모습을 엿보았다. 가상 시나리오지만, 미래 집안 풍경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1. 귀가

퇴근길. 집 앞에 도착했다. 문 옆에 달린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갖다대자,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인식 결과와 함께 출입 허가 표시가 뜬다. 클라우드 서버와 연결된 홈네트워크가 스마트폰을 자동 인식해 보안과 이용자 인식 정보를 전송해준 덕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레이스’를 부른다. 그레이스는 클라우드 서버에 연결된 우리 집 스마트 비서다. 그레이스에게 불을 켜라고 말하자 대답과 함께 현관등이 켜진다.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신발장 위 스크린에 휴대폰을 갖다댄다. 내 건강 상태를 점검한 결과가 화면 위에 뿌려진다. 스마트폰은 메디컬 센서 역할을 한다. 다행히 오늘 혈당과 혈압은 이상이 없다. 현관 앞 대형 유리문에 오늘 기분에 어울리는 동양화를 띄우고 거실로 들어선다.

#2. 거실

거실 벽에 걸린 디스플레이를 켰다. 겉보기엔 그냥 벽과 똑같지만, 사실은 스마트 디스플레이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스마트폰 아이콘처럼 생긴 여러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돌더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 목록을 골라 자동으로 재생해준다. 음악을 들으며 어제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상점과 버스정류장,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모습이 뜨면서 동시에 사진 속 거리 간판이나 옷, 행인들이 맨 가방과 얼굴 모습 등을 디지털 정보로 뽑아낸다. 이 정보들은 관련 상품 목록이나 음식점 메뉴로 바뀌어 화면 왼쪽에 뜬다. 내일 저녁은 어디서 뭘 먹을까.

그러고보니 내일은 할머니가 집을 방문하는 날이다. 미리 일정을 클라우드 서버에 입력해둔 덕분에 스마트 디스플레이가 잊지 않도록 알려줬다. 지난번 할머니가 오셨을 때 프랭크 시나트라 음악을 듣고 즐거워했던 기억도 스마트 디스플레이가 일깨워줬다. 벽 전체가 프랭크 시나트라 활동 사진들로 덮이며 노래가 함께 흐른다.

#3. 주방

냉장고 앞에 섰다. 냉장고에 붙은 자석들이 저마다 메뉴와 요리법, 외식 정보 등을 비춘다. 자석에 내장된 스마트 태그(RFID)가 냉장고 정보 패널과 실시간 정보를 교환하며 각자 준비한 음식 정보를 띄워주는 식이다. 부엌 싱크대 한켠엔 34인치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다. 겉보기엔 PC 모니터 같지만, 얇고 가벼우며 방수 처리도 완벽하다. 음식이 튀거나 더럽혀지면 물에 씻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커피를 한 잔 마시려 한다. 원두가 든 봉투와 커피메이커를 식탁 위에서 좌우로 쓰윽 훑으니 식탁 위에 커피 조리법이 표시된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가 커피메이커와 원두 봉투에 달린 태그를 인식해 관련 정보를 쏴준 덕분이다. 냉장고에 보관된 식재료 정보도 함께 띄워준다. 준비된 식재료로 저녁을 차려야 하니까.

그러고보니 약을 깜박 잊고 안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 약까지 집안에 약통이 너무 많아 때때로 아내 약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약통을 식탁 구석에 올려놓으니, 약 종류와 약 주인 정보가 식탁에 뜬다. 이 역시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가 약통 뚜껑에 달린 태그를 인식해 알려주는 정보다. 아내 약통을 올려놓으면 빨간불이 켜지며 음성과 더불어 경고해준다.

#4. 아이들 방

7살배기 아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쳐주기로 한 날이다. 종이접기는 매번 할 때마다 난감하다. 접는 방법은 왜 그리 복잡한지…. 순서를 까먹기 일쑤다. 하지만 문제 없다. 책상 위에 색종이를 올려놓으니 접는 순서가 색종이 위에 선으로 표시된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가 종이를 인식해 미리 준비해둔 종이접기 메뉴를 전송해줬다. 그러고보니 내일이 아들 생일이다. “그레이스, 생일파티 준비해.” 방 한가운데 놓인 책상이 생일파티용 빛 장식으로 뒤덮인다. 겉보기엔 TV 화면과 비슷하지만, 종이비행기를 누르면 책상 끝까지 날아갔다 돌아오고 꽃을 누르면 활짝 피기도 한다. 손동작을 인식해 화면 속 대상들을 움직이는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이 정도면 내일 생일파티도 문제 없겠군.

#5. 침실

아내와 느긋이 침실 소파에 앉아 주말 외식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소파 맞은편 벽은 곧 웹브라우저다. 외식을 나갈 거리명을 말하니 벽면 전체에 3차원 가상 거리가 뜬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플리커 등에 다른 사람들이 올린 수많은 사진 가운데 해당 거리 사진만 모아 3차원 가상 거리로 합성해 띄워준다. 저녁을 먹고 들를 박물관 정보도 확인한다. 손을 움직여 화면 속 박물관을 눌러 가상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예전같으면 밋밋한 사진만으로 만족했겠지만, 지금은 3D 합성기술로 도자기나 조각상을 360도 회전하며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잠들기 전, 소파 앞 탁자에 내장된 터치 컴퓨터로 미리 주문해둔 잡지를 읽었다.

갑자기 둘쨋딸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책을 읽어달라고 방으로 들어왔다. 책을 펼쳐들자 벽면 한쪽이 책 속 동화세상으로 뒤덮인다. 딸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초록별 세상에선…” 초록 조명이 벽을 장식한다. “고양이가 뛰어놀고…” 고양이가 초록 조명 속을 휙 뛰어간다. 클라우드 서버에 연결된 홈 네트워크가 동화책에 내장된 스마트 태그를 인식해 실시간으로 관련 책 내용을 화면으로 띄워주는 덕분이다.

‘MS 홈’에 구현된 모습들은 아직은 가정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스마트 패널 기술도 아직은 뒤떨어지고, 부품이나 소재를 양산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하지만 공상과학에서나 그칠 풍경은 아니다. ‘MS 홈’은 이렇게 말한다. “10년 뒤면 가정에서 전기를 쓰듯 클라우드 기반 홈네트워크를 쓰는 시대가 된다. MS 홈에 쓰인 기술이나 소재가 값비싸 보이는가? 지금은 첨단 혁신 기술일 지 몰라도, 10년 뒤에는 일반 센서와 재료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발전된 SW와 내추럴 휴먼 인터페이스가 결합하면 충분히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수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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