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허진 | 입력 2011.04.01 00:07 | 수정 2011.04.01 09:54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중앙일보 허진1]
지난 1월 '금강불괴'란 아이디를 쓰는 남성이 한 인터넷 게시판에 "SK텔레콤용(用) 미개통 단말기가 있는데 여기 KT 휴대전화의 유심(USIM) 칩을 꽂으면 바로 쓸 수 있는 거냐"는 질문을 올렸다. 곧 다른 네티즌이 답을 달았다. "일단 SK텔레콤에 가입해 고유번호를 등록해야만 KT 유심 칩을 꽂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새 단말기가 있고 KT 서비스를 쓰고 싶음에도 SK텔레콤 가입부터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일명 '화이트리스트(white list)'라 하는 국내 통신업계의 휴대전화 관리방식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SK텔레콤·KT·LGU+ 등 이동통신 3사에 고유번호를 등록한 휴대전화 단말기만 개통과 사용이 가능하다. 모든 사용 단말기의 고유번호를 이통사가 리스트화해 관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외국처럼 '공 단말기'를 먼저 산 뒤 통신사를 골라 가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유럽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분실·도난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휴대전화의 고유번호만 따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black list)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 리스트에 고유번호가 오르지 않은 휴대전화는 사용자 정보가 담긴 유심 칩만 꽂으면 언제든 개통해 쓸 수 있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휴대전화 가격 거품의 원흉으로도 지목된다. 소비자가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직접 살 수 없는 왜곡된 유통구조로 인해, 제조사와 이통사 간 복잡한 '보조금 거래'가 가능해졌다는 지적이다. 단말기를 이미 보유한 소비자를 위한 요금제도 미비하다. SK텔레콤과 LGU+의 경우 가입자가 대리점에서 단말기를 사든 안 사든 요금이 똑같다. KT만 아이폰에 한해 '공 단말기'로 가입할 경우 요금(월 4만5000원 요금제의 경우 월 1만7000원 저렴)을 깎아주고 있다.
이로 인해 단말기값과 통신료 인하를 위해서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막강한 지배력을 가진 통신사들이 단말기 영역에서까지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윤두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애초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도입한 건 이동통신산업 초기 국내 단말기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며 "아이폰이 대거 도입되는 등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져 이젠 제도를 손질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통신 사업자가 단말기 고유번호를 관리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도 "이미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 걸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화이트리스트 제도에도 단말기 분실 시 관리가 용이한 점 등 여러 장점이 있는 만큼 제도 변화는 균형적인 시각에서 검토해야 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허진 기자 < b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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